당신의 CES가 실패하는 이유
CES는 더 이상 신제품 전시회가 아니다. 구조를 읽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부스를 봐도 남는 것은 없다. CES 2026이 드러낸 실패의 공통 원인을 짚는다.
단순 관람객은 '제품'을 보고, 리더는 '구조'를 읽는다
‘최대’라는 수식어에 속지 마라
CES는 전시장이 아니라, 세계 산업의 기상도다. 많은 이들이 CES를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로 정의하며 화려한 볼거리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가까이 현장을 반복해 관찰하며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CES는 쇼가 아니라 기상도다. 어느 산업에 고기압이 형성되고 있는지, 어디에서 저기압이 몰려오는지, 그리고 어떤 전선이 곧 충돌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세계 산업의 예보 시스템에 가깝다.

CES 2026은 AI·피지컬 AI부터 엔터테인먼트, 로보틱스, 스마트 기술까지 전 영역을 망라한 전시였다. North Hall에서는 AI·IoT·로보틱스 등 산업 기반 기술이, Central Hall에서는 게이밍·AV 중심의 체감형 기술이, South Hall에서는 디자인·소싱을 포함한 B2B 중심 전시가 전개되며, 전체적으로 AI 기반 미래 기술의 방향과 실전 적용 사례가 드러났다.
심지어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현장을 지켰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 공간에는 신제품보다 먼저,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설계한 ‘다음 생존 전략의 기류’가 먼저 감지되기 때문이다. 제품 이면의 의도를 읽지 못한다면, CES는 그저 비싼 입장료를 낸 관광 일정으로 끝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명확한 전략적 프레임 없이 투입되는 공적·사적 리소스는 자칫 거대한 기술 흐름에 대한 오해만 강화하는 기회비용의 낭비가 된다. CES는 단순히 현장을 확인하는 ‘기록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건 본래 ‘판단의 자리’여야 한다.

CES 2026에서 LVCC West Hall이 모빌리티·Vehicle Tech의 중심 공간으로 지정된 이유는 이번 전시가 단순한 모터쇼가 아니라, 자율주행·AI 기반 차량 소프트웨어·커넥티드 차량·eVTOL 등 미래 이동 기술의 “전체 생태계”를 포괄하는 무대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CTA는 이 흐름을 반영해 West Hall을 Vehicle Tech & Advanced Mobility의 공식 허브로 구성하고, Mobility Stage 세션 등을 통해 혁신 방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축구장 30개의 함정
문제는 ‘얼마나 걸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좌표로 봤는가다. 250만 제곱피트에 달하는 전시 공간을 모두 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참가자는 가장 큰 부스, 가장 화려한 로봇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많이 봤다’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는 CES에서 가장 흔한 정보 해석의 오류다. 이 오류는 CES를 단독 이벤트로 소비할 때 반복된다.
CES에서 통찰은 점(Point)이 아니라 선(Line)에서 나온다. 유럽의 IAA(모빌리티), 하노버 메세(제조), 중국 베이징의 주요 로봇 콘퍼런스와 상하이 오토쇼라는 좌표축 위에 CES를 올려놓을 때, 비로소 각 기술이 어떤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출되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전시는 ‘기술 나열’이 아니라, 산업 간 기압 이동을 읽는 작업으로 전환된다.

일론 머스크의 기업들은 CES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전시장이 아닌 ‘인프라’로 CES에 존재한다. 테슬라와 보링컴퍼니의 기술은 CES에서 가장 많이 ‘체험되는’ 존재가 된다. 전시 부스보다 이동 경험을 택한 전략은, 참가하지 않고도 가장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CES의 방향은 전시장 밖에서 이미 결정된다
CES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전시장에 없는 기업들이 설정한 ‘기준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CES에 단순히 참가 기업 명단으로 해석하는 순간, 이 행사는 쉽게 오독된다. 테슬라, 스페이스X, 애플 같은 거인들은 부스를 차리지 않지만, 그들이 구축한 플랫폼 표준과 인프라 생태계는 전시장 전체의 문법을 규정한다.
실제로 엔비디아, 존 디어, 캐터필러 등 CES의 주인공으로 나선 기업들의 전략을 뜯어보면, 결국 이 ‘보이지 않는 거인’들이 확정한 기술적 문법(Standard) 안에서 자신의 점유율을 증명하려는 사투에 가깝다.
이들의 기술 철학과 사업 구조를 모른 채 전시장만 훑는 것은, 게임의 규칙(Rule)을 모르는 상태에서 선수들의 움직임만 관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거인들이 구축한 세계관이 CES라는 교차로에서 어디에서 증폭되고, 어디에서 변형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분석의 출발점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 이유는 로봇의 화려한 움직임이 아니다. 이번 CES에서 이들이 보여준 것은 ‘로봇의 성능’이 아니라 ‘로봇이 투입될 산업 환경’이었다. 시연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자동화가 어디까지 현실로 왔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에 가까웠다.
지정학이 개입된 기술 전선
CES와 MWC가 보여주는 AI 패권의 기압 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중국 기업들이 CES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스페인의 MWC에 화력을 집중하는 현상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이는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AI와 통신 기술의 전선이 어디에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CES는 더 이상 중립적인 기술 박람회가 아니다. 정치, 규제, 자본, 기술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정학적 기상계이며, 어느 무대에 서느냐는 곧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 어떤 메시지를 숨길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된다.
인프라가 된 기술, 그리고 질문의 변화
CES 이후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전시 개막 전날 CES 주관사 CTA가 제시하는 방향성, 그리고 엔비디아의 Jensen Huang, AMD의 Lisa Su 등 글로벌 리더들의 발언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된 변화가 보인다. 기술은 더 이상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의 The Boring Company가 만든 베가스 루프를 타고 Tesla로 이동하는 경험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전시장 안에 전시된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동하고 판단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하부 구조(infrastructure)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CES가 끝난 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새로 나왔는가?”가 아니라, “이 기술들은 결국 인간과 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재편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시작할 때, CES의 수많은 신호들은 비로소 메가트렌드라는 형태로 정렬되기 시작한다.

AMD CEO 리사 수와 AI 연구의 상징적 인물인 페이페이 리가 CES 무대에서 함께 선 이유는, AI의 다음 단계가 ‘더 큰 모델’이 아니라 ‘인간 중심 AI를 실제 산업 인프라 위에 구현하는 문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장면은 AI 연구와 반도체 산업이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설계 축으로 결합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기상도 위에 실제로 나타난 CTA가 주목한 3가지 메가트렌드(1. Intelligent Transformation, 2. Longevity, 3. Engineering Tomorrow)를 하나씩 해부한다. 이제부터는 ‘감상’이 아니라 ‘판단’의 영역이다.
